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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쁘띠 마망(Petite Maman,2021) - ★★★★★

by 닭보끔탕 202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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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전부터 기대하던 영화 <쁘띠 마망>을 드디어 봤다. 러닝타임은 72분으로 굉장히 짧은 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완벽한 시간이었다. 나와 영화 취향이 비슷한 분들 구독해 놓았는데, 시사회 때부터 그분들의 평이 좋았기 때문에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 사전 정보 없이 간 게 신의 한 수 였다.

 

스포 有

 

7살-여자아이-두명이-껴안고-있는-장면
<쁘띠마망 메인포스터>

영화 정보

제목 : 쁘띠마망(Petite Maman)(2021)
감독 : 셀린 시아마
국가 : 프랑스
장르 : 드라마, 판타지
러닝타임 : 72분
등급 : 전체관람가

 


 

 

- 안녕히 계세요.
- 안녕, 잘 가렴.

 

 영화는 시작은 특이하게도 '작별인사'로 시작한다. 넬리가 여러 방을 돌아다니며 인사하는데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마지막 방에 들어왔을 때 넬리의 엄마가 짐을 정리하고 있다. 상실감이 느껴지는 뒷모습에서 '아, 할머니가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싶었다.

 

 

엄마는-바닥에-앉아-책을-보고-있고-7살-딸은-침대에-엎드려서-책을-보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1>

- 그건 뭐야?
- 어릴 때 썼던 글
- 철자가 엉망이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의 고향집으로 간다. 어쩐지 넬리의 엄마는 짐을 정리하며 계속 우울해한다. 아이의 눈에도 그래 보였는지 잠들 기 전, 여기 있는 게 슬프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밤이 되는 게 싫었다는 엄마.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깜깜한 밤이 되면 뭔가 있는 것 같아 무서워했던 어린 시절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그림자를 찾는다.

 

"보이니?"

"아니"

"나도"

 

 나무의 그림자가 흑표범으로 보일 때도 있었는데 이젠 보이지 않는구나. 엄마는 너무 커버렸다.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을 꺼내보며 좋았다고 추억하다가 붙잡을 수 없는 세월에 순간 우울해지기도 한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절반은 이때 그런 기분을 같이 느꼈을 거다. 그리고 넬리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다.

 

 

어두운-밤에-엄마와-딸이-한침대에-누워서-대화하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2>

- 마지막인 줄 몰랐거든

 

 엄마의 우울감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엔 어리지만 아이도 이별은 슬프다. 그리고 넬리는 엄마가 슬퍼하는 것 자체가 슬프다. 요양원을 떠나올 때 뒷좌석에서 계속 엄마에게 말을 걸고 비비적거리며 애정을 드러내거나, 엄마처럼 나 또한 슬프다고 공감해주는 넬리의 위로 방식.

 

"나도 슬퍼"

"왜?"

"할머니한테 작별 인사를 못 해서"

"늘 했잖아"

"마지막엔 제대로 못 했어. 마지막인 줄 몰랐거든"

"할머니도 모르셨을 거야"

 

 초반엔 프랑스 영화는 역시 조금 따분하다 같은 틀에 박힌 생각을 했는데 이 장면부터 무섭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인지도 모르고 떠나보냈던 것들이 떠올라 순식간에 눈물이 났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질무렵-7살-여자아이-두명이-침대위에-나란히-앉아있다
<쁘띠마망 스틸컷3>

- 너를 알게 돼서 기뻐

 

 우울감에 빠진 엄마는 고향집을 먼저 떠난다. 그리고 뒷마당 샛길과 이어진 숲에서 엄마의 오두막과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닮은 두 사람, 나이도 똑같고 이름도 서로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넬리와 마리옹이 친해지고 역할극을 하며 서로의 연기를 칭찬하는 부분이 있다. 배우가 될 거라고 미래를 그리는 마리옹에게 꼭 그렇게 될 거라며 응원해주는 넬리.

 "엄마는 사는 게 싫은가 봐" 엄마의 부재에 넬리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할머니와 이별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엄마는 꼭 돌아오실 거라고 위로해주는 마리옹.

 넬리가 마리옹과 친해지는 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이해하고 성숙해지는 아이의 성장과정과도 같다. 

 마리옹의 집에 초대받아 하루 종일 같이 놀다 잠들 때, 넬리는 엄마가 말했던 흑표범을 보게 된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천재가 분명하다. 넬리가 엄마가 아닌 '마리옹'이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자아이-한명은-의자에-앉아있고-양쪽에-엄마와-친구가-서서-생일축하를-해주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4>

- 안녕히 가세요.
- 안녕.

 

 8살 마리옹과의 만남은 할머니와 손녀에게도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넥타이를 매달라며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마리옹의 집에 오가며 차곡차곡 시간을 쌓는다.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던 게 슬펐던 넬리는 수술하러 떠나는 마리옹과 포옹하고 과거의 할머니와도 작별 인사하며 슬픔의 매듭을 짓는다.

 할머니가 쓰다듬어준 볼에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가만히 서있던 넬리는 당차게 자리를 털어내고 현재의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오프닝이 스쳐 지나가면서 또다시 나를 울게 했던 장면.

 

 


 

영화 속 포인트

 

빨간옷을-입은-31살의-엄마와-파란옷을-입은-7살-딸의-사진-그리고-7살로-돌아간-엄마와-7살-그대로의-딸은-모두-초록색-옷을-입고-핫케이크를-만들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

① 색

 

 붉은 옷을 입고 떠난 엄마와 붉은 옷을 입은 마리옹과의 첫 만남.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마리옹은 붉은색을 주로 입고 나온다.

 이별 전 마지막 날, 넬리와 마리옹은 파란색도 빨간색도 아닌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 이 장면은 <쁘띠 마망>에서 가장 밝은 장면이다.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구나 싶을 만큼 행복한 장면인데 실제로도 감독님이 디렉팅 하지 않은 유일한 장면이라고 한다. 가장 순수하고 친밀할 때 비슷한 색을 가지게 된 넬리와 마리옹.

 그리고 사진은 없지만 31살의 마리옹이 집으로 돌아온 엔딩 장면에서는 마리옹이 넬리와 아주 흡사한 스타일로 옷을 입고 있다. 색도 같고 패션도 비슷하다. 

 GV 후기를 보면 고유의 색 자체가 어떤 큰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닌 듯 하지만 두 사람을 구분하는 용도로 쓰인 건 맞는 것 같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스타일링이 비슷해져 간다.

 

 

침대에-엎드려있는-딸과-바닥에-앉아있는-엄마가-보고있는-붉은색-체크무늬의-노트
<쁘띠마망 스틸컷>

② 노트

 

 극초반, 넬리가 그건 뭐야? 하고 물었던 노트가 있다. 31살의 마리옹이 살펴보던 노트는 넬리가 8살의 마리옹의 방에 몰래 들어갔을 때 확인한 노트와 같다.

 

 

어두운-밤에-침대에-누워서-대화하는-엄마와-딸
<쁘띠마망 스틸컷>

③ 어둠 속 속마음

 

 영화 내내 부정적인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는 넬리가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는 장면이다. 31살의 마리옹에게 슬픔을 말하는 왼쪽 장면/8살의 마리옹에게 엄마의 우울함이 나 때문일까 봐 하는 걱정을 드러내는 오른쪽 장면이 닮아있다. 빛이 거의 없는 점과 구도까지 똑같다. 밤이 되면 왠지 솔직해지는 현실적인 모습이 영화에도 반영된 듯하다.

 이건 막상 영화 보면서는 몰랐고 다른 장면 찾으려고 예고편을 보다가 갑자기 두 장면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딸은-식탁-앞에-앉아있고-아빠는-주방에서-빵에-잼을-바르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

④ 엄마의 이름

 

 두 동갑내기 소녀가 만나서 통성명할 때 나는 마리옹의 이름을 듣고도 그게 넬리의 엄마라는 걸 몰랐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엄마구나 했지 처음부터 예상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2차를 뛰고 나니 이름이 들렸다.

 고향집에서 처음 맞는 아침에 남편이 엄마의 이름을 부른다. "마리옹, 기억나?" 가구 뒤 오랜 벽지를 보며 건네는 말이다. 엄마의 이름은 이미 앞에 나왔었다.

 

 

7살-여자아이-두명이-강가에서-보트를-띄워-노를-젓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

⑤ 음악

 

 보통 많은 영화, 드라마들이 음악으로 극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슬플 때, 기쁠 때, 긴박할 때 등등 음악이 주는 효과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데 <쁘띠 마망>에서는 엔딩 크레딧을 제외하면 노래가 단 한 번 밖에 안 나온다. 그것도 아주 벅찬 순간에 웅장한 사운드로 포인트를 줘서 머릿속에 각인시켜버린다.

 OST 작사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너와 함께 아이가 되는 꿈', '내 마음이 네 마음 안에' 하는 가사를 엔딩 크레딧에서 보면서 또 울컥한 건 나뿐만이 아니였을 거다.

 


 

파란옷을-입은-아이와-빨간옷을-입은-아이가-포옹하고있다
<쁘띠마망 스틸컷>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온전한 시각

 

 대부분의 딸들이 엄마에게 유대감, 책임감, 부채감을 동시에 가진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 겠지만 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효' 때문에 가지는 책임감은 아니다.

 이건 <쁘띠 마망>에서도 잘 얘기해주고 있다. 엄마가 슬픈 게 나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넬리.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기민하다. 집안의 작은 변화만 있어도 눈치를 본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 사랑하지만 너무 어려서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모습에 때론 혼자 상처 받는다. 아이뿐만 아니라 사실 가족이라는 게 그렇다. 어떨 땐 누구보다 가까운 것 같지만 어떨 땐 누구보다 멀게 느껴져 상처 받기가 쉽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타임리프' 자체가 아니다. 내가 몰랐던 엄마의 어릴 적 모습, 내가 몰랐던 딸의 속마음을 공유하고 알아가는 그 시간들이 중요한 것이다.

 

 무조건 딸이 엄마를 이해해라!!하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동갑내기 아이 둘이 만나 가까워지는 장면만으로 엄마의 과거도, 우울감도 네 탓이 아니니 괜한 부채감 갖지 말아라 알려줄 뿐이다. 힘들어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함께 할게 서로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이야기.

 특별한 CG 하나 없었음에도 이 판타지적인 타임라인은 나를 잘 이해시킨다. 조용조용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진행되는 스토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판타지인데, 어쩐지 판타지라는 말은 이 영화 속의 현실적인 것들을 다 영화적 설정으로 보는 것만 같아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감명깊게 보고 GV후기를 찾아봤는데 감독님은 이 장르를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보다 완벽한 표현이 있을까? <쁘띠 마망>은 여성일 때 비로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 영화다.

 

 엔딩 장면, 돌아온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다 "마리옹"하고 이름으로 불러보는 넬리의 표정이 자꾸 아른거린다. 엄마도 이름이 있고 어린 시절이 있고 꿈이 있었던 순간이 있다. 그 이름이 왜 그렇게 애틋했는지 이때 몇 번째 눈물을 닦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왠지 나도 엄마를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이미 내 맘 속엔 네가 있거든." - <쁘띠 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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